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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여기에 (어쩌면 방명록)

블로그에 들어왔을 때 이 이미지가 맞아주는 것이 좋다
 한동안 여기에 머물게 해야지
덧글란은 방명록으로



닐 게이먼의 만화 '샌드맨'의 한 장면.

머물고 싶은 이미지.
나는 이 이미지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처럼.



+ 아주 오랫만에 스킨을 바꾸었다. 몇년만일까.
계절이 바뀌고 있다.


# by 赤燐 | 2010/01/01 01:26 | 트랙백 | 덧글(41)
가을방학

줄리아하트의 정바비와 브로콜리너마저의 계피가 만난 '가을방학'

줄리아 하트의 음악은
지금의 내가 좋아하기에는 지나치게 달다고 생각했는데

계피의 음색이 더해지자-




사무실에서 무심히 듣다가
일이 손에 안 잡혀서 비내리는 창문을 몇분이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이런 가사를 이런 목소리로 부르는 건 반칙.이야, 라고 생각하곤 했어.
브로콜리너마저의 예전 음반을 들을 때도.

===========================================================================

넌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좋았었다고 말했지
여름도 겨울도 넌 싫었고
봄날이란 녀석도 도무지 네 맘 같진 않았었다며
하지만 가을만 방학이 없어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넌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이맘때 하늘을 보면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절대 너를 울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정말 좋아하게 되었기에
절대 너를 버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너무나도 늦어 모든 것들이

넌 익숙하다 했지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 by 타륜 | 2009/12/10 15:26 | 음악들 | 트랙백 | 덧글(0)
-


예쁜 여자친구가 생겼다.

삼일동안 자정 즈음에 어두운 캠퍼스에서 데이트를 했다.
한 손에는 캔 음료수를 들고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싸늘한 건물 밖을 함께 돌아다녔다.

그 아이는 삼 일간 학교에서 밤을 새며 석고를 붙잡고 있었고
나 역시 일정을 마치고 학교로 가면 거의 자정이었다.
서로 바쁜 와중에도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좋아해" 라고 말하면 그 아이는 "내가 더!" 라고 말한다.
"있지, 나 머리 속이 고장난 거 같아.
'보고싶어 좋아해 보고싶어 좋아해' 만 계속 나온다" 하며
그 아이는 웃었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추운 밤에도, 피로에도, 아픈 손과 발에도, 그 무엇에도 불구하고.


# by 타륜 | 2009/11/27 17:16 | 트랙백 | 덧글(6)
아픈 날

일요일부터 정신없이 바빠지겠지만, 오늘은 퍽 한가하다.
그래서인지 몸이 좋지 않다. 몸살에 걸리기 직전 같은 예감.
눈이 무겁고 어지럽고 눕고만 싶고...그런 흔한.

나는 내가 지금 일하는 곳을 퍽 좋아하고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일터란 어쩔 수 없이 쓸쓸한 곳인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머리를 파마하고 온 날, 사무실 사람들은 잘랐냐고 물었고,
머리를 자르고 온 날,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알아보았다
선량한 차장님은 며칠이 지나서야 '머리 잘랐네요'라고 말하고 웃었다.

내 머리가 바뀐 것을 알아본 사람은
매일까지 도장을 찍는,
사무실 바로 옆의 테아크 아웃 커피집 언니였다.


지금 아파서 비틀비틀하고 있지만
이 사무실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며,
앞으로도 알 일도,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상황을 흔쾌히 수긍하면서도
조금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아픈 날.
# by 타륜 | 2009/11/26 16:59 | 트랙백 | 덧글(0)
삼호선 버터플라이 EP

오랫만에 본 삼호선의 공연은 생각보다 온건한 느낌이었지만
이번 EP의 곡들은 놀랍게 훌륭하다.
(사실은 끔찍하게 훌륭하다, 고 적고 싶다)

언제나 삼호선은 음반보다 공연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반대가 되는 걸까.

눈이 멀 듯한 노이즈의 빛나는 폭포들은 이젠 없는 걸까, 조금 아쉬었지만
예전처럼 삼호선의 공연을 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어. 오오. 상아 언니.













# by 타륜 | 2009/11/26 12:15 | 음악들 | 트랙백 | 덧글(0)
사이토우 마리코 - 미열

하늘이 아름답다. 날아가고 싶게 하는, 아니, 그 속으로 잠겨 가라앉고 싶게 하는 푸른 빛.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짙푸른 하늘과 맑고 차가운 햇빛. 메마른 나뭇가지의 어딘지 에로틱한 감각까지.

하지만 오늘, 계절에 맞지 않는
유월 시를 하나 적는다. 

늘 위급상황인 이 회사에서
간만에 만난 한가한 시간에.




微熱

  나무에게서 사람에게로 옮는 병이 있다. 땅에다 깊이 뿌리 박으면서 하늘을 날고 싶다는 병에 걸리는 이가 있다. 몸통을 쪼개 자기 나이테를 보고 싶어지는 병이 있다. 자기 몸에다 많은 새들을 앉게 하고 싶어지는 병. 같은 데에 날마다 새롭게 기다리지 말고 늦지도 말고 서 있고 싶다는 병.
  서울 비원 주변의 나무들이 당당하고 그 그림자들이 더 없이 짙은 해질녁 거기 가면 푸른 눈사태로 생매장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니 어떤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육이오 때, 여기는 희생자들의 유체를 모으는 장소였다. 서울대 병원이 가까이 있었기에. 그때 땅이 비옥해졌고? 나무들도 잘 자랐다. 그래서 지금도 저 나무 그림자들은 짙고도 짙은 거란다.
  사람에게서 나무에게로 옮는 병이 있다.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병. 이 거리의 내력을, 이 땅의 모든 내력을 빠짐없이 배고 싶다는 병. 거기 서서 기다리지 말고 늦지도 말고, 모든 따라붙는 이, 모든 앞지르는 이들에게 그것을 비춰주고 싶다는 병, 告하고 싶다는 병.


# by 타륜 | 2009/11/18 11:17 | 시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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